▲ 김용식/ 동부 산촌허브 대표

당백호(唐佰虎)라는 사람은 뛰어난 재주꾼으로 아주 총명하여 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림과 글씨를 비롯하여 음악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시를 잘 지었으며 다방면으로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하루는 그가 배 위에서 강변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곧장 배 위로 올라와 절을 했다. 그리고는 부채를 내 놓으며 그 위에 그림과 시를 써 달라고 졸랐다. 원래 당백호는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 평소 같았으면 선선히 그림과 시를 써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만은 왠지 귀찮아서 혼자 배의 가장자리로 가 술을 마시며 창밖의 풍경만을 바라 볼 뿐, 사람들의 청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 때 날렵하게 생긴 유람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다가왔다. 그 배는 꽃모양 조각을 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색깔로 채색이 되어 있었다.

당백호는 선실 밖으로 나가 그 화려한 유람선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뱃머리에 단아한 청색 옷을 걸쳐 입고 머리 모양을 예쁘게 한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당백호를 보더니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백호는 그만 홀딱 반하고 말았다.
배가 지나간 다음 당백호는 너무나 궁금해서 배를 부리는 사공에서 그 유람선의 정체를 물었다.

“방금 지나간 저 날렵한 유람선이 누구네 것인지 알고 있소?”
“무석(無錫)에 있는 화 학사(華 學士)네 것이라오.”

그 말을 들은 당백호는 그 배를 쫓아가고 싶어졌다.
그러자면 작고 날렵한 배가 필요했다. 때마침 그가 원하는 그런 배가 한 척이 출렁이며 다가왔다.
당백호는 손짓으로 그 배를 불렀다. 우연의 일치로 배를 부리는 선주는 그와 가깝게 지내는 왕아의(王雅宜)였다.
그는 지금 사람들을 태우고 모산(茅山)에 공을 드리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당백호는 거짓말을 꾸며댔다.

“나 역시 모산에 가고 싶었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었네. 지금 마침 자네가 간다고 하니 나도 같이 따라가도 되겠지?”
왕아의는 그를 매우 반기며 말했다.
“아, 그야 대환영이지! 환영이고 말고.”
이렇게 해서 당백호는 그들의 배게 타게 되었다. 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금 전의 그 유람선을 따라 잡을 수가 있었다.
이튿날 무석에 도착하자 앞서 가던 그 배를 수로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당백호는 핑곗거리를 찾아 친구에게 말했다.

“이 곳은 아름다운 곳이니 우리도 구경이나 좀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세! 자네 생각은 어떤가?”
왕아의도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기꺼이 찬선을 하고 적당한 곳에 배를 댔다, 그런 다음 일행들은 떠들썩한 저잣거리를 찾아갔다. 그 틈에 당백호는 일부러 복잡한 사람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렇게 일행을 떨쳐 버리고 혼자 여기저기 헤메다가 마침내 그가 찾고 싶어 했던 문제의 유람선을 발견했다. 그때 갑자기 앞쪽에서 왁자하게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키시오. 비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높은 가마가 오고 있고 그 뒤로 하녀들로 보이는 많은 여인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유람선 위에서 보았던 여인도 그 중에 끼어 있었다.
당백호는 그녀를 보자 뛸 듯이 기뻤다. 가마가 커다랗고 호화스러운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당백호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곳에 누구네 입인지 물었다. 그래서 그곳은 화 학사가 살고 있는 화부(華府)이고 가마에 타고 있던 사람은 곧 화 부인(華 婦人)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백호가 배로 돌아오자 왕아의가 물었다.
“도대체 어딜 갔다 오는 건가? 우리는 걱정이 되어 오랫동안 찾아 헤맸네!”
“어찌 된 일인지 나도 모르겠군! 삽시간에 사람들 틈에 끼었다가 그만 자네들을 놓치고 말았는데 내가 길을 몰라서......!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찾아오게 되었네. 미안하이!”
그는 이렇게 둘러대며 화 부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모두 잠자리에 들고 한밤중이 되자 당백호는 갑자기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깨웠다.
그리고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방금 내가 꿈속에서 금갑옷을 입은 신선을 만났는데 금 막대기로 다짜고짜 나를 때리며 예불을 드리러 가는 태도가 불량하다고 야단을 치더군, 한 달간 목욕재계하고 근신한 다음 다시 오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테니 자네들 먼저 가게나!”

날이 밝자 당백호는 친구 일행과 헤어졌다. 그리고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허름한 옷 한 벌과 모자를 사서 쓰고 아주 궁색한 모양으로 꾸몄다. 그리고 화 학사 집안에서 운영하는 전당포를 찾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오현(吳顯)사람으로 강선(康宣)이라고 합니다. 장부정리도 잘 할 줄 알고 해서체 글씨도 잘 씁니다. 전에는 가정교사를 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마누라가 죽고 나까지 일자리를 잃어 이렇게 홀로 떠돌며 일자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여기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는지요? 채용해 주신다면 그 큰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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