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텃밭을 가꾸며

▲ 길 위에의 저자/이정순
밭을 잠시 방심했더니 잡초가 무성하다. 뒤늦게 아침저녁으로 뽑아 보지만 대책이 없다. 명아주는 줄기가 시시한 나뭇가지처럼 금시 굵어진다. 소루쟁이도 수수알갱이처럼 씨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서 커다란 자기 잎사귀가 만들어 낸 그늘로 주변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러나 정작 성가신 건 밭둑을 온통 점령하며 번식하는 환삼 넝쿨이다. 가늘고 긴 줄기로 다른 식물의 몸을 칭칭 감아서 서서히 말려 죽이는 독한 근성까지 지닌 식물이다. 몸에는 가시 같은 잔털을 달고 자신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피부에 자극을 줘서 가려움과 따끔거림을 유발시키며 자기의 존재를 확고하게 알린다.

힘으로 잡초를 제거하기에는 감당이 안 되어 중장비를 불러서 밭을 갈아엎었다. 거대한 기계의 몸집답게 꾸물거리는 동작과는 달리 힘은 위대했다. 우거졌던 밭이 순식간에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잡초의 흔적까지 없앴다. 작물은 농군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 부지런히 돌보다가 며 칠만 무관심하면 또 잡초로 뒤덮인다. 이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웠다. 고추와 토마토와 오이와 배추까지 먹을 만큼 심고 텃밭 자락을 남겨서 해바라기 꽃씨를 뿌렸다. 푸성귀가 허기를 채워주며 나눔의 기쁨을 주지만 수시로 허해지는 가슴을 채우기에는 꽃이 제격이다. 덕분에 텃밭이 꽃밭이고 꽃밭이 텃밭이다.

해바라기 씨를 뿌린 자리에 심지도 않은 아주까리 싹이 우후죽순처럼 돋는다. 몇 년 전에 심었던 것이 계절을 기다려 제 맘대로 나고 진다. 씨앗을 돌봐 준 적이 없는데 넉넉한 품새를 지닌 흙이 품어준 것이다. 정성을 쏟는 해바라기보다 버려둔 아주까리가 더 튼실하게 자란다. 잎이 자라면 나물이 되고 열매는 기름으로 쓰임새가 있지만 미련 없이 뽑아 버린다. 제 자리 모르고 해바라기 자리에서의 아주까리는 끝내 잡초에 불과하다. 낄 자리 안 낄 자리 아무데나 마구 끼는 사람처럼 흉하기는 마찬가지다.

잡초를 없애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매일 호미를 들고 병정처럼 설치며 뽑고 또 뽑아도 끈질기다. 모진 삶만을 고집하며 밟혀도 살아나고 뽑히다가 허리가 꺾이면 비스듬하게라도 자란다. 인간의 기준에 의해서 잡초로 분리된 식물이니 잡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고집 또한 여간 센 게 아니다. 뿌리나 줄기나 씨앗으로까지 번식도 여러 형태다. 지독한 생명력에 넌덜머리가 나면서도 제초제는 자제하는 걸 철칙처럼 세웠는데 결국 제초제를 뿌렸다. 몸에 제초제가 닿으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조차 미처 알지 못한 채 무거운 약통을 짊어지고 낑낑대니 약의 액체가 등을 줄줄 타고 흘러내렸다. 잡초만 죽은 게 아니고 내 어깨의 피부도 벗겨졌다. 독한 제초제가 지렁이 외에도 많은 해를 치명적으로 끼쳤을 생각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며칠 시들시들 하던 잡초는 마치 화마가 스친 것처럼 벌겋게 타 들어간다. 신록의 계절에 때 아닌 황폐함을 보니 너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나 싶으면서도 다른 여지가 없었다고 변명한다.

중장비 쓴 값이면 고생 없이 일 년 내내 사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한 뙤기의 밭이라도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심은 이상 성장을 도와야 한다. 아이에게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주듯이 가물면 물을 주고 바람 불면 허리 꺾이지 않도록 지지대도 세운다. 평화를 맞으려고 열어 놓은 내 마음에도 텃밭보다 더 무성한 잡초가 나 있다. 상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미리 걱정시키는 잡초부터 없앤다. 굴욕과 함께 마음을 지배하는 욕망을 뽑기 위해 자판기 두드리는 손가락이 호미질만큼이나 힘겹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