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옥

더운 날씨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하지만 바람은 단 한 점도 불어오지 않았다. 목까지 차오른 더위 때문에 모든 신경들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그때였다. 매미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평소에 듣던 매미의 울음과는 많이 달랐다. 녀석의 울음소리는 세상 모든 소리를 삼킬 듯이 크고 요란스러웠다. 시끄러운 소리에 책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방에서 뛰쳐나왔다. 아들은 소리가 너무 큰 걸로 보아 집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라 했다. 말도 안 된다며 아들의 말을 무시했다. 아들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잠시 후 아들은 손가락으로 발코니를 가리켰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매미는 발코니 창문에 바짝 붙어 울고 있었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는 귀를 찢는 듯 날카로웠다. 가까이서 들어야하는 매미 울음소리는 소음 그 자체였다. 가뜩이나 더워서 신경이 곤두선 나는 녀석을 쫓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아들이 가만히 내 팔을 붙잡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매미는 십오 일을 살기 위해 칠 년이라는 세월을 땅 속에서 애벌레로 산대요.”
아들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어둡고 차가운 땅 속에서 칠년 동안 살았을 녀석을 생각하니 야박하게 쫓아낼 수가 없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심상치 않다. 지독한 울음이다. 목청이 터질 듯 울어댄다. 칠 년이라는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걸까. 매미는 온몸을 들썩이며 모든 것을 토해내고 있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제키고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친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희야가 죽었다는 말을 했다. 들고 있던 수화기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갑자기 세상이 정지한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흑백사진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와 색채가 죽어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를 들어 다시 한번 친구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제 희야와 통화할 때도 죽음의 낌새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친구는 희야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제만 해도 희야는 새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고 했다.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전치 2주 진단을 받고도 공부할 욕심에 퇴원했다며 까르르 웃었다. 자신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며 삶의 열정을 내보였다. 공부를 마치고 학원을 열거라며 새로운 꿈을 펼쳐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죽다니. 희야의 나이 서른여섯. 죽음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이다. 꿈을 이룰 수 있는 나이며, 삶의 절정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나이다.

그녀가 떠난 후 며칠이 지났지만,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습관처럼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빈 허공을 가르는 전화 벨소리만 들릴 뿐 희야의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힘없이 수화기를 놓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떠나버린 하늘이라도 보고 싶었다. 발코니 창문을 열기 위해 발을 옮겼다. 발을 내딛는 순간 발밑으로 전해지는 촉감에 오싹 한기가 일었다. 까칠한 느낌에 얼른 발을 들어올렸다. 매미였다. 죽은 매미의 몸은 바짝 말라있었다. 수분이 빠져나간 매미의 모습은 마른낙엽 같았다. 그토록 세상을 향해 울부짖던 녀석의 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처량했다. 눈물이 나왔다. 애써 부인했던 친구의 죽음까지 겹쳐지면서 봇물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가만히 매미를 집어 들었다. 휴지로 녀석의 주검을 쌌다. 그리고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녀석이 우리 집 발코니에서 살지 않았다면 맘껏 숲 속을 날아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새 짝을 만나 알을 낳았을 것이고, 순리대로 자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매미가 그토록 간절하게 울었던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었을 것이다. 그 뜻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매미를 이곳에서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희야가 떠난 뒤, 그녀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떠나기 하루 전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붙잡아 달라는 하소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녀가 웃고 있어서 행복한 줄 알았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이 있을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그녀를 그렇게 쉽게 잃어버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매미에게도 희야에게도 난 방관자였다. 그들이 전하는 깊은 내면의 아픔을 보지 않고 밖으로 비춰지는 겉모습만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놓아버린 하루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행여 숨겨진 아픔은 없는지. 두 번 다시 방관자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약력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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