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연 분

“어디, 그게 보여.”
용기에 담긴 홍삼액을 흔들어 보았다. 크고 작은 거품들이 뭉쳐 있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 육각형이다.
홍삼 액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고는 망설였다. 처음 해 보는 일이거니와 예닐곱 번을 찌고 말려야 한다니,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성 싶어서다. 이런 갈등은 가족들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데서 끝이 났다. 계절이 바뀌면서 아이들도 그렇고 남편 역시 요즈음 지친 기색이 완연하여, 실패를 무릅쓰고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오륙년 근 인삼을 구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인삼시장을 돌아다니며 다리품을 팔아 좋은 삼을 살 수 있었다. 여러 번 헹구어서 황토를 씻어낸 인삼을 채반에 건져 놓았다. 전기 찜 솥 안에 인삼을 넣으면서 ‘잘 되어야 하는데’ ‘잘 될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덟 시간 뜨거운 솥 안에서 달구어졌지만 수분을 조금 덜어낸 듯한 모습 외에는 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채반에 옮겨 햇빛이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하루를 말렸다. 그러기를 두세 번. 차츰 몸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은 거무스름하면서 진득한 액이 묻어나기도 한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수분은 증발해 버리고 암적갈색의 홍삼이 되어갔다. 주근과 지근에 붙어있던 세근(細根)이 몸속의 물기를 앗겨 버리고 바스락거리며 떨어졌다. 이제 원뿌리에 가까운 몸통만이 뜨거운 열기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홍삼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중도에 그만 두고자 하는 마음을 여러 번 추슬렀다. 실패할까 두려워서가 아니고 귀찮아서도 아니다. 전기 솥 안에 갇혀있는 삼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울렸던 그 무엇. 그것은 홍삼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녹아드는 인고의 시간이 어머니의 육신을 화장터로 보내던 날 느꼈던 먹먹함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인삼이 홍삼이 되어가는 수순을 밟아가듯 어머니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와는 십일 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으셨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잘못 되면서 고생도 많이 하셨다. 일련의 일들에 생채기가 생긴 가슴은 작은 일에도 멍이 들곤 하셨다.
금년 봄, 칠순 생신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어머니는 떠나셨다. 심장마비였다. 예기치 않은 어머니의 마지막 여행은 나를 참아내기 어렵게 했다. 그 동안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안내 표지판의 ‘화장 중’이라는 빨간 글씨로 되살아나 나의 몸 구석구석을 달구었다.
두어 시간쯤 흘렀을까. 표지판은 화장이 완료되었음으로 전환되었다. 유리창 너머로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토록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던 어머니의 삶이 폭삭 재로 바뀌어 있었다. 미처 바뀌지 못한 한 많은 어머니의 유골이 분쇄되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어머니는 그렇게 나에게서 멀리 떠나셨다. 나와의 거리는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는 곳으로.

어머니는 영정 안에서 마냥 웃고 계셨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아픔으로 다가왔다. 고달팠던 지난 세월을 부리고 떠나시던 날, 흐렸던 하늘은 한 차례 비를 쏟아내고서야 흰 구름을 보여 주었다.
그날의 시린 기억으로 전기 솥 안에 들어 있는 인삼이 화장장 안의 모습으로 비추어져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인삼을 찌고 말리는 일이 일과(日課)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다. 말리는 과정에서 비라도 맞을까, 서로 엉켜서 상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저리 뒤집어야 마음이 놓였다.
예닐곱 번의 찌고 말리는 과정이 끝난 홍삼을 홍삼제조기에 넣고 만 이틀을 달였다. 그러고도 숙성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육각형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육각수는 정상세포를 도와 몸속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활동을 저지하거나 없애 주기 때문에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음용한다.

홍삼을 달이는 과정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은 홍삼액을 얻었다. 엑기스를 용기에 담아내고 제조기 속을 들여다본다. 통 속에 들어갈 때는 마른 장작 같았던 홍삼이 지금은 물에 불고 몸속의 양분마저 내어주어서인지 작은 충격에도 뭉개진다. 홍삼 찌꺼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들어 모아둔다. 넋 놓고 바라보던 내 눈에 희미하게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아둔 홍삼 찌꺼기에서 시선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나는 앉아 있다.

약력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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